#1 짧은 소감
사람들은 보통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힘든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비록 그 힘든 시간이 끝난뒤
그 시간을 되돌아보며 보람을 혹은 뿌듯함을 느낄지언정 말이다.
나 역시 지난 4주간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데 나는 그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동안
오히려 그 시간들을 즐기려고 했고,
그 시간들이 좀 더 길어지기를 바랬었다.
지난 4주간의 교생실습 기간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그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수업을 준비하면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수업을 실제로 하면서는
내가 못하는 것들을 고쳐 나갈 수 있었고,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은
헤어지기가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귀여웠고,
그네들은 아마도 몰랐겠지만,
그 아이들이 웃으며 반갑게 해주는 인사 한 번에
정말로 어디선가 에너지가 솟아나오는 것 같았다.
#2 수업
처음엔 너무나 걱정이 많았다.
지금껏 20분 정도 되는 발표수업은 해봤지만,
50분이나 되는 시간을 뭐하며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등학생들, 그것도 수준이 천차만별인 아이들을 상대로 어떤 수준에 맞춰야 할지?
발표수업 때도 떨리기만 한데, 과연 수업 시간에 안 떨고 할 수 있을지?
혹시 내가 잘못 전달해 수많은 학생들이 잘못된 지식을 가지게 되진 않을지?
수업 시간에 아무도 안 듣고 전부 졸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비록 내가 아는 부분과 크게 동떨어지지는 않은
부분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야함에도
부담감은 너무나 컸고, 거의 매일 12시, 1시가가 넘도록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야구중계 시청이랑 병행하느라 더 늦어지긴 했지만.;;)
때로는 수업 도중 아이들이 거의 듣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복도에서 만났을 때 반갑게 웃으며 "선생님 수업 잘 들었어요"하는
한 마디에 다시금 힘이 불끈불끈 솟기도 했다.
수업을 엉망으로 하고 나왔을 때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잘 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처럼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 의한
그리고 나 스스로에 의한 수많은 평가들을 통해
내가 부족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새롭게 고쳐갈 수 있는,
나 스스로를 자극할 수 있는 너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열정적인 수업"이라고 표현해 준 한 아이의 편지를 보며
나 스스로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 해 준비했던
내 진정성과 진심이 순순한 아이들의 눈에는 보였던 것 같아,
너무나 기분좋았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 나의 신념에 다시 한 번
확신을 가져다 준 시간이었다.
라고 하면 과장일까?
#3 아이들.
지금도 아이들 생각만 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이들이 준 편지와 우리반 아이들의 소풍 사진으로 책상위의 벽면을 장식하며
다시금 그네들을 떠올려본다.
물론 내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 먼저 말걸어주지 않던 아이들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우리반에 대한 안 좋은 소리들.
우리 때와는 달랐던 아이들의 태도들.
땜에 첨엔 조금 속상하기도 힘들기도 했지만,
가면 갈수록 아이들과 친해지며,
그 아이들의 순수함이 조금씩 보였던 것 같다.
특히 나에게 선물과 함께 정성스런 편지를 써줬던 S와
다른 선생님들한테 혹여 미움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E의 편지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고,
어쩌면 선생님들은 이런 아이들의 순수함에
힘든 생활을 견딜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정성스럽게 편지지를 만들어 초콜렛들을 금속통에 넣어줬던 H에게는
고맙단 말도 제대로 못해 너무 미안하다.
메일을 보낸다고 했으니, 그 때 고맙단 말을 해야겠다.
음료수에 편지를 써서 회의실을 찾아왔던 H와,
직접 만든 쿠키를 줬던 S.
에게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반 아이들과
2학기 때 찾아가겠다고 했던 약속,
꼭 지킬 것이다...
#4 관료제의 역기능
내가 두 번째 수업한 내용이 관료제의 역기능이었는데,
학교는 관료제의 역기능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답답한 곳이었다.
그 곳에서 돌아가는 행정적인 절차 등의 문제는
한국의 공무원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에 그렇다라고 하더라도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안이한 태도는 답답했다.
물론 이것은 교육을 대하는 철학의 차이일수도,
혹은 아무런 경험없는 자의 헛소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중권은 이번 광우병과 관련한 촛불집회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며,
"탈근대적인 시민들을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다스리려고 한다"라고 했는데,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태도가 딱 그랬다.
이미 탈근대화된 학생들을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려고 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권위는 학생들이 복종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납득하고 동의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근거가 제시되고,
거기에 학생들이 동의했을 때 비로소 거기에 대한 권위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위에 따라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학생들이 그 기준에 따를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교육에서
혹은 일관성을 잃고 선생님들의 기분, 분위기에 따라 처벌이 이루어지는 교육에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민주성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학생인 만큼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중요하고,
한국의 입시위주 교육 현실에서 더더욱 그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억지로 열심히 시키고, 학생들이 거기에 따라오도록 해서는 곤란하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한다.
히딩크식, 로이스터식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해
너무나 이상적이고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근데 과연 그럴까?
여전히 많은 선생님들은
때로는 학생들에게 독설도 퍼붓고,
엄격하고, 무섭게, 그리고 권위적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직 성인이 안 된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건 옛날부터 이어져 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일 뿐이다.
마치 영화 "투캅스"에서 신참 형사가 고참 비리 형사를 닮아가는 듯,
선생님들도 옛날 선생님들을 그렇게 닮아가고 있는 듯 했다.
그냥 너무나 안이하게 그러한 옛날 방식으로 아이들을 다루려 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학생들이기에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매로서 엄격함으로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독려하고 다독임으로서 따뜻한 대화로서, 자신감을 심어줌으로서
가능성을 열어주는 교육이 되어야지,
그 가능성들을 선생님들이 임의로 재단해버리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온건한 방법만으로 안 되는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학교는 세상의 무서움을 선생님의 무서움과 엄격함으로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가 세상을 알고 배우도록 해야 하는 곳이다.
마지막 순간 나에게 편지를 줬던 E가
나에게 이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줬던 것 같다.
#5 내일부터는 전쟁.
처장님이 뜬금없이
금요일날 전화가 와서는
급한 일이 없으면 토요일날 올라오면 안 되겠나고 했다.
나는 물론 안 된다고 거절했다.
아마도 광우병 쇠고기 집회 때문에 정신이 없는가보다...
나는 찝찝했고, 어제 문자를 보내 죄송하다고 하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답장이 왔다.
"걱정말고 잘 정리하고 와라. 여기는 지금 전쟁터고, 우리는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다"
휴~~
내일부터는 아마 내 삶이 전쟁터가 될 듯 하다.
그동안 밀렸을 일에, 광우병 집회에, 대학원 기말고사 기간까지 다가오고.....
전쟁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푹 자둬야 겠다.
그리고 4주간의 힘든 시간들은
다시금 내 삶을 전쟁에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줬을 것이라 기대한다.
사람들은 보통 힘든 시간을 보내는 동안
그 힘든 시간들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비록 그 힘든 시간이 끝난뒤
그 시간을 되돌아보며 보람을 혹은 뿌듯함을 느낄지언정 말이다.
나 역시 지난 4주간 힘든 시간들을 보냈다.
그런데 나는 그 힘든 시간들을 보내고 있는 동안
오히려 그 시간들을 즐기려고 했고,
그 시간들이 좀 더 길어지기를 바랬었다.
지난 4주간의 교생실습 기간은 나에게 그런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그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수업을 준비하면서는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고,
수업을 실제로 하면서는
내가 못하는 것들을 고쳐 나갈 수 있었고,
많은 사람 앞에 서는 것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었다.
아이들은
헤어지기가 너무나 아쉬울 정도로 귀여웠고,
그네들은 아마도 몰랐겠지만,
그 아이들이 웃으며 반갑게 해주는 인사 한 번에
정말로 어디선가 에너지가 솟아나오는 것 같았다.
#2 수업
처음엔 너무나 걱정이 많았다.
지금껏 20분 정도 되는 발표수업은 해봤지만,
50분이나 되는 시간을 뭐하며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등학생들, 그것도 수준이 천차만별인 아이들을 상대로 어떤 수준에 맞춰야 할지?
발표수업 때도 떨리기만 한데, 과연 수업 시간에 안 떨고 할 수 있을지?
혹시 내가 잘못 전달해 수많은 학생들이 잘못된 지식을 가지게 되진 않을지?
수업 시간에 아무도 안 듣고 전부 졸고 있으면 어떻게 해야할지?
비록 내가 아는 부분과 크게 동떨어지지는 않은
부분을 가르쳐야 하는 것이야함에도
부담감은 너무나 컸고, 거의 매일 12시, 1시가가 넘도록
공부를 했던 것 같다.
(물론 야구중계 시청이랑 병행하느라 더 늦어지긴 했지만.;;)
때로는 수업 도중 아이들이 거의 듣지 않아 속상할 때도 있었지만
복도에서 만났을 때 반갑게 웃으며 "선생님 수업 잘 들었어요"하는
한 마디에 다시금 힘이 불끈불끈 솟기도 했다.
수업을 엉망으로 하고 나왔을 때는 나 자신이 부끄러웠고,
잘 했다고 생각했을 때는 나 자신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이처럼 내 수업을 듣는 학생들에 의한
그리고 나 스스로에 의한 수많은 평가들을 통해
내가 부족한 것에 대해 반성하고,
새롭게 고쳐갈 수 있는,
나 스스로를 자극할 수 있는 너무나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열정적인 수업"이라고 표현해 준 한 아이의 편지를 보며
나 스스로 열심히 그리고 최선을 다 해 준비했던
내 진정성과 진심이 순순한 아이들의 눈에는 보였던 것 같아,
너무나 기분좋았다.
"진심은 통한다"고 믿는 나의 신념에 다시 한 번
확신을 가져다 준 시간이었다.
라고 하면 과장일까?
#3 아이들.
지금도 아이들 생각만 하면 절로 웃음이 나온다.
아이들이 준 편지와 우리반 아이들의 소풍 사진으로 책상위의 벽면을 장식하며
다시금 그네들을 떠올려본다.
물론 내가 먼저 다가가기 전에 먼저 말걸어주지 않던 아이들과
여기저기서 들려오던 우리반에 대한 안 좋은 소리들.
우리 때와는 달랐던 아이들의 태도들.
땜에 첨엔 조금 속상하기도 힘들기도 했지만,
가면 갈수록 아이들과 친해지며,
그 아이들의 순수함이 조금씩 보였던 것 같다.
특히 나에게 선물과 함께 정성스런 편지를 써줬던 S와
다른 선생님들한테 혹여 미움을 받지 않을까 걱정되었던 E의 편지는
너무나 고맙고 감사했고,
어쩌면 선생님들은 이런 아이들의 순수함에
힘든 생활을 견딜 수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해봤다.
정성스럽게 편지지를 만들어 초콜렛들을 금속통에 넣어줬던 H에게는
고맙단 말도 제대로 못해 너무 미안하다.
메일을 보낸다고 했으니, 그 때 고맙단 말을 해야겠다.
음료수에 편지를 써서 회의실을 찾아왔던 H와,
직접 만든 쿠키를 줬던 S.
에게도 너무나 고맙고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우리반 아이들과
2학기 때 찾아가겠다고 했던 약속,
꼭 지킬 것이다...
#4 관료제의 역기능
내가 두 번째 수업한 내용이 관료제의 역기능이었는데,
학교는 관료제의 역기능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답답한 곳이었다.
그 곳에서 돌아가는 행정적인 절차 등의 문제는
한국의 공무원 사회 어디에서나 볼 수 있기에 그렇다라고 하더라도
학생에 대한 선생님의 안이한 태도는 답답했다.
물론 이것은 교육을 대하는 철학의 차이일수도,
혹은 아무런 경험없는 자의 헛소리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진중권은 이번 광우병과 관련한 촛불집회에 대한 정부의 대응을 보며,
"탈근대적인 시민들을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다스리려고 한다"라고 했는데,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태도가 딱 그랬다.
이미 탈근대화된 학생들을 전근대적인 방식으로 가르치려고 했다
지금의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권위는 학생들이 복종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라
학생들 스스로가 납득하고 동의하는 것이어야 한다.
학생들이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근거가 제시되고,
거기에 학생들이 동의했을 때 비로소 거기에 대한 권위가 만들어지는 것이고,
그렇게 만들어진 권위에 따라 학생들의 잘못된 행동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방적으로 기준을 정하고, 학생들이 그 기준에 따를 것을 요구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처벌하는 교육에서
혹은 일관성을 잃고 선생님들의 기분, 분위기에 따라 처벌이 이루어지는 교육에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민주성을 기대하기는 불가능하다
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학생인 만큼 공부를 잘 하는 것은 중요하고,
한국의 입시위주 교육 현실에서 더더욱 그러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억지로 열심히 시키고, 학생들이 거기에 따라오도록 해서는 곤란하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필요에 의해 공부를 하도록 해야 한다.
히딩크식, 로이스터식 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나의 이런 생각에 대해
너무나 이상적이고 현실을 모르는 소리라고 비난할지 모른다.
근데 과연 그럴까?
여전히 많은 선생님들은
때로는 학생들에게 독설도 퍼붓고,
엄격하고, 무섭게, 그리고 권위적으로 다가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아직 성인이 안 된 학생들에게는
그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내가 보기엔 그건 옛날부터 이어져 오는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일 뿐이다.
마치 영화 "투캅스"에서 신참 형사가 고참 비리 형사를 닮아가는 듯,
선생님들도 옛날 선생님들을 그렇게 닮아가고 있는 듯 했다.
그냥 너무나 안이하게 그러한 옛날 방식으로 아이들을 다루려 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나는 반대로 아직 성인이 되지 않은 학생들이기에
그래서는 안 된다라고 생각한다.
스스로가 변할 수 있는 가능성들을 매로서 엄격함으로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독려하고 다독임으로서 따뜻한 대화로서, 자신감을 심어줌으로서
가능성을 열어주는 교육이 되어야지,
그 가능성들을 선생님들이 임의로 재단해버리는
교육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온건한 방법만으로 안 되는 학생들이 있을지도 모르나,
그것이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선생님은 고기 잡는 법을 가르쳐주는 사람이라고 했던가?
학교는 세상의 무서움을 선생님의 무서움과 엄격함으로 가르쳐주는 곳이 아니라,
스스로가 세상을 알고 배우도록 해야 하는 곳이다.
마지막 순간 나에게 편지를 줬던 E가
나에게 이 많은 것들을 가르쳐 줬던 것 같다.
#5 내일부터는 전쟁.
처장님이 뜬금없이
금요일날 전화가 와서는
급한 일이 없으면 토요일날 올라오면 안 되겠나고 했다.
나는 물론 안 된다고 거절했다.
아마도 광우병 쇠고기 집회 때문에 정신이 없는가보다...
나는 찝찝했고, 어제 문자를 보내 죄송하다고 하며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답장이 왔다.
"걱정말고 잘 정리하고 와라. 여기는 지금 전쟁터고, 우리는 많은 것을 요구받고 있다"
휴~~
내일부터는 아마 내 삶이 전쟁터가 될 듯 하다.
그동안 밀렸을 일에, 광우병 집회에, 대학원 기말고사 기간까지 다가오고.....
전쟁을 대비하는 마음으로
오늘은 푹 자둬야 겠다.
그리고 4주간의 힘든 시간들은
다시금 내 삶을 전쟁에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줬을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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