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5년 전에 내가 살던 집
2005년 내가 대학교 3학년 2학기를 복학할 무렵이었다.
1살 어린 여동생이 대학 졸업 후 서울에 취직을 했고,
부모님께서는 동생과 내가 살 집(전세)을 구해주셨다.
그 집은 주상복합 오피스텔이 막 유행하기 시작할 무렵의
대기업에서 건설한 주상복합 오피스텔이었다.
원룸이긴 하지만 방이 꽤 컸고,
방 하나를 미닫이문이 구분하고 있어 투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새롭게 건설한 그 건물 입구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카드키가 있어야 했다.
(지금은 일반적이지만 당시애는 난생처음 보는 시스템이었다.)
지하철역 바로 앞이었고 1층에는 각종 상가가 있고,
2층에는 심지어 빕스(VIPS)가 위치하고 있었다.
서울에 온 뒤로 내가 살던 하숙집, 자취방들에 비해서
더할 나위 없이 깨끗하였고 편리하였다.
분리수거하는 곳도 별도로 마련되어 있었고,
세탁기와 냉장고 등이 옵션으로 있던 곳이었다.
근데 난 이상하게 그 집이 불편했었다.
그 당시 돈도 벌지 못하고 단지 대학생이었던 나에게
너무 과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이유도 있다.
여전히 대학 앞에서 반지하에 사는 친구들
등록금이 부담스러워 여기저기 아르바이트를 하던 친구들
월세가 부담스러워 공동으로 원룸을 사용하는 친구들
을 보며 내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맞나라는 생각들이
(그 당시엔 최신식의) 카드키 출입시스템을 이용할 때마다 그런 생각들이 들었다.
가난하면 이런 아파트에는 들어오지 말라는 건가라는 생각들과 함께...
#2 나이가 들어가며 무뎌지는 것들
나는 지금 교사로서 매우 안정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은 큰 아파트를 내 명의로 가지고 있다.
물론 너무나 많은 빚과 함께이다.
빚 때문에 걱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너무 안정적이고 너무나 편안한 집에 살고 있다.
근데 지금은 더 이상 출입구를 들어오거나 집을 들어오며
불편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15년전의 그 아파트는 오로지 부모님이 마련해준 것이고
이 집에는 그나마 나와 내 아내의 노력이 조금이나마 들어갔기 때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며
15년전 나에 비해 뭔가 많이 무더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감각들이 많이 무더졌고.
그동안 내가 "가난"을 너무 외면하고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나이들어가고 있는 모습,
점점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모습은 아닐까 생각했다.
대학시절 내가 데모를 하며
점점 편안한 삶에 익숙해져 보수적으로 변해가는 어른들을 보며
나는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라고 생각했던 그런 어른들로 변해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3 "가난"에 대한 3부작
이 책을 처음 읽게 된 건
내가 정기구독하고 있는 <시사IN>(711호) 기사에서였다.
<기사보기>
가난을 혐오하는 시대 가난의 ‘곁에 있다는 것’ - 시사IN (sisain.co.kr)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1978년)
김중미의 <괭이부리말 아이들>(2000년)
김중미의 <곁에 있다는 것>(2021년)
을 같은 공간에서 일어나는 서로 다른 시대의 서로 다른 "가난"에 대한
이야기라고 묘사하고 있었다.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즉시 책을 주문했다.
난 사실 작가의 유명작 <괭이부리말 아이들>을 읽지 않았고,
(유명한 책이란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서 굳이 읽고 싶지 않았다. 그 시절 나는 그랬다.)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대학교 때 읽어봤지만,
그 당시의 나에게 뭔가 그렇게 큰 울림은 없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출간된 소설이었기 때문인지 그냥 옛날에 일어난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이 책의 이야기는 달랐다.

#4 은강에 사는 사람들
"1층 오른쪽 102호에는 작년 겨울에 팔순 잔치를 한 할머니가 혼자 산다. 마흔 살쯤 된 아들과 둘이 살았는데 용접공인 아들이 광양에서 일하게 됐다며 떠난 뒤 홀로 ........"
"1층 원룸은 비어있다."
"2층 오른쪽 202호에는 다섯 살, 두 살 남매를 둔 부부가 산다. 아빠는 아침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해 만날 일이 거의 없는데 주말에 어쩌다 층계참에서 만나 인사를 하면 무뚝뚝한 표정으로 고개만 끄덕인다. 엄마는 베트남에서 왔는데....."
"2층 원룸 201호에는 중국인 부부가 사는데 거의 얼굴 볼 새가 없다. 보통 새벽에 나가 밤늦게 들어오는데..."
"3층 302호에는 우리가 살고, 그 맞은편 301호에는 영민 오빠와 동생 정민 언니가 산다. 두 남매는 내가 다닌 초등학교 뒤편에 있는 보육 시설에서...."
이 책은 조세희 선생님의 "난.쏘.공"에도 등장했던 "은강"(인천의 어느 지역)이라는 장소에서 그대로 살고 있는
다양한 인연의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인연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너무 과장하지도 너무 비현실적이지도 않게
우리 주변의 이웃으로 표현하고 있는 작가의 담담함이 좋았다.
#5 코로나 19 이후
코로나19 이후 난 교사로서 정해진 월급을 받고 있다.
매일 마스크를 쓰고, 난데없는 온라인 수업을 해야 하는, 여행을 갈 수 없는
"불편함"은 있지만, "어려움"은 없다.
하지만 코로나로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고,
우리 사회의 빈부격차는 정말로 눈에 띌 정도로 심해지고 있다.
그런 어려움을 직접 겪고 있는 사람들이 주변에 없다보니
뉴스로만, 딴 세상 이야기인처럼 받아들이고 있지만
마음 한 켠은 여전히 불편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이 소설은 나의 그 불편함 감정을
적나라하게 건드리고 자극하는 것 같았다.
방송에서는 끊임없이
"주식"과 "부동산"과 "~~코인"으로 돈을 번 사람들이 등장하고
사람들에게 투자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여전히 어떤 사람들은 그러한 것을 꿈꾸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럼에도 방송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마치 모르는 사람들"인 것처럼
그들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으로
"주식"과 "부동산"과 "~~코인"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아
너무 불편하다.
우리 사회의 복지정책은 이전에 비해 아주 좋아져
굶어 죽는 사람들은 줄어들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이 시대에 "가난"이 왜 문제인가?
먹고 사는 문제가 거의 해결되지 않았는가?
근데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가난"은 결코 절대적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이 시대의 인식을 공유하고 있다.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코 과거 "노예"로 살아갈 수 없고,
"휴대폰""냉장고""세탁기""수세식 화장실 및 부엌"등이 없는 삶을
상상하기 힘들고 아마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과거에 비해 너무나 편리해졌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스트레스를 받고 힘들다.
"가난"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사라졌다고 해도
지금 이 시대의 "가난"은 분명히 존재하고
지금 이 시대의 "가난"은 과거 먹고 살기 힘들었을 시대의 "가난"보다 결코 가볍지 않다.
"상대적 가난"을 이야기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과거보다 배가 부른데도 그냥 하는 투정이 아니다라는 것을
분명히 인식해야 하고 그래야 오늘날 "가난"의 문제가 드러날 것이다.
#6 우리 사회는 가난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대학교에 가서는 열심히 "사회과학" 학회에 가입해 열심히 공부하였고,
1, 2학년 때는 나름 데모도 열심히 하러 다녔고,
그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었다.
그 때 나의 고민들과 행동들은
지금 나의 고민과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냈지만,
그것이 정말로 우리 사회에 어떤 도움이 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이 책을 읽으며
우리의 가난은 해결될 수 있을까?
란 생각이 들었다.
"아빠는 3년 동안 부당해고에 맞섰지만 끝내 공장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장례식 때 온 동료들은 아빠를 대신해서 꼭 복직을 이뤄 낼 거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러나 아저씨들은 여전히 회사 앞에서 다른 동료들의 눈총을 받으며 농성을 하고 있다.
그 뒤로도 여러 해고 노동자가 광고탑과 굴뚝 위로 올라갔지만 어느 곳 하나 해결됐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그래서 지우가 광화문에 가자고 성화를 하는데도 썩 내키질 않았다.
촛불집회로 대통령이 탄핵된다고 세상이 갑자기 힘없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거라는 기대는 들지 않았다.
수찬이가 보기에 사람들은 자기와 상관없는 슬픈 기억은 빨리 잊고 싶어 한다.
고통은 늘 당사자만의 몫이다.
세월호 참사가 그랬고, 아빠의 죽음도 그랬다"
이 책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이 구절을 읽으며 마음이 아팠다.
정말로 그런 것 같기 때문이다.
"정치"에 기대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아니 우리는 그 가난한 사람들의 "곁에"라도 있어줄 수 있을까?
나에게 여러가지 불편함과 여러가지 질문들을 떠 오르게 한 책이었다.
P.S.
1. 조세희 선생님의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은 나에게 아주 큰 울림은 없었지만,
내가 군대에 있을 때 한 친구가 선물해준 조세희 선생님의 산문집, <침묵의 뿌리>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책 중 하나이다.
그리고 내가 처음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때,
집회 현장마다 카메라 하나를 가지고 찾아다니던
선생님의 모습은 너무나 인상적으로 남아있다.
2. 이 책에는 한 배달원의 억울한 사고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최근 한 의대생의 죽음은 매우 큰 이슈가 되었다.
미스테리한 어쩌면 억울할 수도 있는 죽음 때문이기도 하지만,
왜 최근의 이선호 씨와 같은 죽음들은, 어쩌면 더 억울한 이런 죽음들은
너무나 쉽게 잊혀지고 있는것일까?
여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글을 한 번쯤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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