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친절한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안,
내 옆에는 20살이 갓 넘은 여자애가 앉았었는데,
한국인일까 일본인일까 참 궁금했다.
사실은 한국인 같았는데 마치 일본인인체 하고 앉아 있길래..
그러다 기내식이 나왔고,
그 친구가 간장봉지를 뜯다가
그만 그 간장들이 내 바지 근처로 확 튀었다.
그 친구가 "스미마셍"이라고 하면서 미안한 얼굴을 한다.
나를 일본인으로 본 걸까, 그 친구가 일본인일까...이런 생각을 하며
일본어를 못했기에 그냥 손으로 거듭 괜찮다는 표시를 했다.
어짜피 후지산에서 흙으로, 그리고 도쿄의 더운 날씨속에서 7일동안 땀으로 쩔어 빨아야 할 바지라
바지에 뭐가 묻든지 별로 상관은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 친구의 미안한 표시는 그 때가 마지막이었다.
나는 일부러 식사를 마치고 바지 주변에 튄 간장을 보며
인상을 쓰며 계속해서 닦는 척을 했으나
더 이상 신경도 안 쓰는 듯 했다.
나는 여기서 그 친구가 싸가지 없는 한국인임을 직감했다.
한국인들이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 아니라,
일본인들은 매우 친절했다.
만약 일본인이었다면 훨씬 더 자주 심각하게 미안해하리는 것을
짧은 8일동안의 여행으로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그만큼 일본인들은 친절했다.
그 친구는 내가 한국인임을 당당하게 표시내며
한국신문까지 읽기도 했으나
비행기를 내릴때 조차 눈한번 마주치지 않았고,
미안하다는 인사한번 하지 않았다.
일본에 있는 동안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
이었는데....
#2 듯한
하지만 일본 사람들의 친절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조금 께림칙한 부분이 있었다.
가장 친절한 일본인들은 내가 물건을 사는 가게에서 만날 수 있었다.
라는 사실은 많은 걸 말해준다.
뭐..그네들이 무조건 돈 앞에서 친절한 것만은 아니었고,
길을 가는 사람들도, 전철의 역무원 아저씨도 친절했지만,
흔히 말하는 갑과 을의 관계에서
을의 관계에 처한 일본 사람들은 특히나 친절했고,
이상하게도 그들의 친절속에서 뭔가 진심같은 것이 느껴지지 않았다.
한번은 어떤 가게에 들어갔는데
그리 비싼 음식을 고른 건 아니었지만
그 주인은 나한테 굉장히 친절했다.
큰 소리로 인사도 하고 고맙다는 말도 했다.
내가 식사를 하던 중
아마도 그 가게에 야채같은 것을 납품하는 아저씨가 들어왔다.
그 아저씨는 야채를 모두 건네주고 나가는 길에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꾸벅꾸벅 고개를 숙여가며 했고,
가게 주인은 그저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여주는 정도였다.
한편으로 일본 사람들의 친절은
어딘지 모르게 몸에 굉장히 익은 것처럼 보였다.
친절한 것이, 친절하기에 좋긴 하지만
친절한 것 자체로 그것이 진심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행동은 어릴 때부터 수없이 배워 몸에 익은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그들의 몸에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조금은 불편해 보이기도 했다.
#3 외로움
도쿄돔에서 야구를 보고 돌아오는 길에
비싼 도쿄돔내의 음식은 비싸서 많이 못 먹어서 배가 고팠고
그러던 중 갈아탈려고 나갔던 우에노역 근처의 식당에 들어갔다.
거의 밤 11시가 가까운 시간이었는데도
식당안은 사람들로 우글우글했다.
그것도 혼자서 밥 먹으로 온 사람들로.
다들 양복이나 정장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서
아마도 집에 돌아가는 길에 배가 출출해 뭔가를 먹고 가는 것처럼 보였다.
근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이들은 왜 이 시간에 집에 안 들어가고 혼자서 여기와서 뭘 먹고 있는 것일까?
집에 들어가면 먹을 걸 안 주나?
집에 들어가서 뭔가를 먹는게 가족들한테 민폐끼치는 일일까?
이전의 모임 자리에서 혹시 미안해서 배불리 먹지 못한 것일까?
별의 별 생각이 다 들었고,
돌아서서 밥먹고 있는 사람들의 어깨가 너무나 외롭고 애처로워보였다.
#4 무관심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 <아무도 모른다>는
부모없이 살다가 아무도 모르게 죽어갔던 4명의 아이의 실화를 다루고 있다.
일본 특유의 무관심이 만들어낸 끔찍한 풍경,으로
사실 그런 일이야 한국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긴 하지만
일본은 좀 더 심했다.
야구를 보러 가고 있는데,
중요한 순간마다 사람들이 통로쪽에 서서는
앉아 있는 사람들의 관전을 방해하곤 했다.
한국이었으면, 조금 있다 바로 사람들이 나오라고 소리쳤겠지만,
일본에서는 어느 누구 하나 말하지 않았다.
관리요원들이 와서야 그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그 사람들이 알고 한 잘못이 아니라,
그들도 모르게 그냥 야구를 보다보니까 하게 된 잘못이기에 그걸 말하는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닌데,
일본 사람들은 그것 조차도 꺼려하는 것 같다.
뭐..이런 무관심의 사례들은 일본에 머무르는 동안 수없이 볼 수 있었다.
J로부터 가족을 토막살해하는 사건이 꽤나 자주 일어난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말하고 싶었던 것을 말못하고,
함부로 하고 싶었던 것을 함부로 못하고
친절하게 해야 하는 억압은
일본 사람들의 딜레마였던 것 같다.
#5 정말로
그러나 정말로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친절을 느낄 때도 있었다.
후지산을 등산하고 내려와서
고텐바 5고메(버스가 다니는 곳)까지 내려오니
가게 하나가 보였다.
우리나라산도 하산하고 내려오면 꼭 이런 가게들이 하나씩 있는 그런 가게.
띄엄띄엄 사람들이 내려왔고,
그 할머니는 나에게 뭐라고 말을 한다.
아마도 "날씨도 덥고 힘들지요?"정도의 말인 것 같다.
나는 말을 못 알아듣고,
그냥 "스미마셍, 와타시와 칸코쿠징데스"라는 대답을 했다.
그랫더니 아 그러냐고 하면서..
다른 사람들에게 그랬던 것 처럼
나에게도 옷을 털라고 하면서
터는 도구를 하나 가져다주면서
자기는 한국은 김치밖에 모른다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그러고는 나보고 햇볕에 있지 말고, 그늘로, 들어오라고 재촉한다.
나는 그늘로 들어가서
조그만 물 한 병을 사 먹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는 정상을 지나 물 한 모금 마시지 못했기 거의 갈증으로 죽기 직전이었다)
그걸 벌컥벌컥 한 번에 다 마셔버리고 계속 옷을 털고 있으니
할머니가 나의 빈 물병을 가져가더니 공짜로 물을 담아다 준다....
헉...일본에서 처음 본 경우였다.
내가 한자로 적힌 버스 시간표를 보며
시간을 찾으려고 이리저리 찾으려고 헤매는 사이
할머니가 고텐바 버스는 12시(당시는 9시 50분)에 있다고
시간표를 보며 알려준다.
나는 그 날 저녁 6시까지 친구를 만나러 가야했기 때문에
일찍 내려가야 했기에 걱정스런 표정을 짓자..
할머니는 나보고 혼자라서 택시는 비싸다는 말을 하다가
이래저래 4명을 맞추더니 나보고 택시를 타고 가란다.
그래서 얼마냐고..그랬더니
흙에다가 막대기로 가격을 적어준다.
버스는 얼마고, 택시는 얼마라고...
그렇게 나는 일본 사람 넷과 택시를 타고
버스보다는 훨씬 쾌적하고 더 빨리
그리고 더 싼 가격으로 고텐바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마움의 표시로
내려오는 길에 한국에서 간 엽서 몇 장을 드렸다.
그랬더니 주변 가족들한테 자랑하면서
너무 좋아하는 모습이 꼭 어린애같다.
그러나 이러한 특징들로 일본 사람들을
하나로 묶어낼 수는 없다.
이러한 성향의 사람들을 무조건 일본 사람들이라 할 수 없고,
반대로 일본 사람들을 무조건 이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단지 8일 동안 관찰한 바에 따르면
그냥 대체로 그 섬에 사는 사람들의 성향이 그런 것 같더라.
그 정도 수준에서 이해해줬으면 좋겠다.
나를 위의 기준으로 따지자면
나는 한국 사람보다는 일본 사람이어야 한다.ㅋ
'生活의 發見'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소개팅을 한 어느날 저녁 (1) | 2007.08.26 |
|---|---|
| 후지산 등산 (6) | 2007.08.23 |
| 일본여행을 마무리하며... (6) | 2007.08.12 |
| 내 이름이 나온 세 번째 기사 (0) | 2007.08.01 |
| 일본 여행 (6) | 2007.07.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