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쿄라이쿠우
정확하게 새벽 4시 50분이 조금 넘어선 시각.
후지산 정상까지 한 줄로 길게 늘어선 세계 각지의 사람들은
갑자기 "와"하는 소리를 질렀고,
저쪽에서 붉은 해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냈다.
후지산의 일출은 뭔가 특별한게 있다.
일본 사람들은
후지산의 일출에
높임을 의미하는 御(어)를 더해
御來光(쿄라이쿠우)라는 특별한 이름으로 부른다.
새벽4시가 넘어서자 쿄라이쿠우를 보기 위한 세계 각지의 사람들로
후지산의 등산로는 꽉 채워졌다.
겨우 3시간 반만 자고 일어난데다
너무 높은 높이(후지산 정상은 3776m, 백두산은 2774m)에 힘들었지만
나는 정상에서 일출을 보고 싶은 마음에
최선을 다해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숨을 헐떡 거리다 포기했다.
다른 사람들도 정상에서 일출보기를 포기하고
등산로 곳곳에 자리를 잡고서는 해 뜨기를 기다렸다.
약20분전부터 붉은 빛을 퍼뜨리던 해는
드디어 하늘을 비집고 나왔다.
너무 흥분된 마음에
카메라의 초점도 엉뚱하게 맞춰놓고
일출시의 노출방법은 새까맣게 잊어버리고
셔터를 마구 눌러댔다.
(똑같은 느낌의 초점이 흐뜨러진 일출 사진만 20장은 찍었을거다.
한국와서 생각하니 너무 아까웠지만)
#2 계기
후지산은
일본을 상징하는 산으로
모든 일본인들이 후지산을 등산하기를 원하고
후지산 등반에 신성한 의미를 부여한다고
등산은 7-8월달에만 허용이 되고,
그동안 많은 외국인들 또한 후지산에 도전한다.
고 가이드북에 나와있었다.
더운 여름에, 그리고 휴가철에 여행하는 것은 최악이었으나
이 때만 된다고 하는 후지산을 꼭 포함시켜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도 뭐 그러한 상징에 도전해보고 싶었다고 해야하나..
그리고 지루한 도쿄여행에 뭔가 청량제 같은 역할을 해 주기를 원했다.
후지산은 높이에 따라 1고메(1合目-가장 아래)-10고메(10합목-정상-3776m)까지 이루어져 있고,
일반적으로 등산은 버스를 타고 5고메까지 가서
5고메부터 시작한다.
내가 후지산에 갈 거라고 했더니
호스텔에서 같은 방에 묵었던 호주애 하나가 자기는 어제 갔다왔다그런다.
근데 자기는 1고메부터 등산했다며
1고메부터 순서대로 정상까지 소인이 찍힌 긴 나무막대기를 보여준다.
갑자기 나도 혹해서,
그면 1고메부터 출발하면 몇 시간이 걸리나고 물었더니 12시간 정도 걸린다고 한다.
미쳤다....
그래도 평소 몸상태였으면 도전해봤겠지만,
아직은 재발을 조심해야 하는 시기라 참기로 했다.
(요즘도 일어나면 눈이 제대로 감기는지 눈을 꼭 감아보는 습관이 생겼다)
#3 후지산 가는 길
후지산 가기 전날
도쿄돔에 같이 갔던 J가
자기가 갔던 후지산 8고메에 있는 산장을 예약해줬다.
그리고 당일 나는 모든 짐을 호스텔에서 가지고 나와서
아침 9시쯤 버스터미널이 신주꾸역에 도착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나의 후지산 여정은 순조로워 보였다.
10시55분에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1시쯤 후지산에 도착하고
등산을 해서 산장에 저녁에 도착하면
산장에서 충분히 쉬고, 충분히 잠을 잔 다음
다음날 새벽 일어나 정상에 올라 일출을 보고
하산하여, 하코네에 가서 여유있게 온천을 하고선
후지시에 살고있는 친구를 만나러 가는 계획들이
딱 맞아떨어지겠구나 했는데...
10시55분 버스가 매진이었다.
그리고 다음 버스는 6시간 후인 오후4시55분에 있었다.
나는 혹시나 예약했던 사람이 늦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고
일단 4시55분 티켓을 구입한 다음 10시55분 출발 버스 앞에서 기다렸다.
10시55분이 되었고, 예상대로 빈 자리 몇 개가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온갖 손짓, 몸짐, 표정으로 차장한테 내 상황을 설명했다.
빈자리를 가리키면서 나는 4시55분 표를 구입했는데,
지금 출발하는 이 버스를 타야 한다고,..
애절한 표정으로...
나를 이해한듯 잠시 머뭇거리다 내 표를 가지고 매표소로 가서 물어봐준다.
역시 일본 사람들은 친절하구나 하고 있는데,
들려오는 대답은 안 된다는 손짓이다....ㅠㅠ
완전 의욕 상실하고,
너무 피곤해서 신주꾸 중앙공원 벤치에 누워서 약 2시간동안 자 버렸다.
깨서 여기저기를 돌아다녔으나 시간은 흐르지 않고
더운 날씨에 계속해서 피로만 쌓여갈 뿐이었다.
그래도 시간은 흘러 4시55분 버스를 탔다.
너무 피곤했지만,
버스 밖의 낯선 풍경들에
구경하느라 도대체가 잠을 잘 수가 없다.
시골길이 나와서 잠시 눈을 붙였다가
사람들이 웅성거려서 깨어보니
저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후지산은 화산재로 이루어진 산으로
정말 초등학생때 그림 그리던 산마냥
달랑 봉우리 하나가 구름 위로 우뚝 솟아 있는 산이다.
구름위로 우뚝솟은 후지산의 광경은 장관이었다.
마치 지금까지 쌓였던 피로가 씻겨내려가는 듯 했다.
#4 험난한 여정
저녁7시쯤,
후지산 5고메에 도착했다.
후지산 소인을 찍어주는 막대기를 1000엔에 구입하고(소인을 찍는데는 200-300엔)
바람도 많이 불고 날씨가 너무 추워서
(후지산은 5고메가 이미 1700m이다)
위에는 준비해간 등산복을 입고,
아래는 하나밖에 없는 청바지를 그대로 입고
머리에는 후레쉬를 달고
운동화를 다시 한 번 꼭 메고
등산을 시작했다.
사실 피로가 씻겨내려가는 듯 했지만
정말로 피로가 씻겨내려가지는 않았다.
그래도 빨리 산장에 도착해 가능한 많은 잠을 청하기 위해
앞 사람들을 이리저리 추월해가며
꽤 빠른 속도로 치고 올라갔다.
하지만 10시가 넘어서자 피로가 급격히 느껴지기 시작했고,
이것이 피로인지 고산병 증세인지 몰라도
한 발걸음을 떼기가 힘들 지경이 되고,
두 세 걸음 가다가 쉬고,
호흡도 심하게 거칠어지고,
막대기에 기대 쉬다가
꾸벅꾸벅 졸기까지 한다.
하지만 그래도 힘들게 힘들게 올라간다.
위로 올라가니까 바위가 많아서
아찔한 순간이 몇 번 있기도 했다.
그렇게 11시가 조금 넘어 드디어 산장에 도착해
정신없이 잠에 취해버렸다.
다음날 새벽에 일어나 걸었고,
일출을 보았고
정상에 도착했다.
#5 내려옴
올라간 것도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면
내려오는 것도 그랬다.
하코네를 가기 위해 올라갈 때와는 다른 코스로 내려왔고,
그 내려오는 길은 약간 굵은 흙들로 이루어진
모래사장 같았다.
한 발 내 딛을때마다
발이 발목위까지 잠겼고,
조금만 속도를 내면 먼지를 일으켰으며,
특별한 길이 없어 그냥 땅을 위해 일직선으로 내려가는 길이었다.
아마도 더러워지는 걸 감수한다면
옆으로 굴러서 순식간에 내려갈 수 있을듯도 할 정도였다.
이미 준비해간 물을 정상에 오르기전 다 먹어버려 목이 마를대로 마른 상황에서
정면에서 강하게 내려쬐는 햇볕과 싸워야했지만,
너무 특별하고 재밌는 등산로에 감동이었다.
이런 등산을 혼자 경험한다는게 너무나 아까울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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