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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活의 發見

사립학교란 케이블카를 타고가는 삶은 어떤것일까?


달콤했었다.


얼마전 아버지가 **학교에
사회 교사 자리가 있다고 하던데 한 번 자세히 알아봐줄까?
라고 물을 때 순간 달콤했었다.
지금 이렇게 공부하는 것은 처음부터 이미 계획되어 있던 과정이었고
아직 지겹거나 힘들다고 말할 단계는 아니었지만
달콤했었다.
이 방향으로 이렇게 올라가면 가야할 정상이 나올지 어떨지도 모르는 힘겨운 산길을 걷다가
케이블카를 타고 너무나 편하게 정확한 정상에 도달할 수 있다는데
어찌 달콤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상하게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지기까지 했었다.

이전부터 사립 학교를 한 번 알아봐줄까 물어오는 부모님에게 처음엔 단숨에 거절했지만
친구들과 이런저런 상담 혹은 이야기를 나누며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참이었기에
더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렇게 편안해진 마음은,
이미 선생님이 되어서 교단에 서 있을 내 모습까지 상상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이렇게 간사한 동물이었지.
라는 당연한 진리를 잠시 잊어도 좋을만한 순간이기도 했다.


결론 : 그 제안을 거절했다.

모르겠다.
부모님을 설득시키기 위해 이런저런 거절의 이유를 동원하기도 했지만,
내가 왜 안하겠다고 한 건지.
왜 그렇게 달콤한 유혹을 나는 거절했는지.
내 무엇이 그 제안을 거절하게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정말 그것이 잘한 결정인지조차도.
아직 잘 모르겠다.

그냥 그 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지금 31살의 나이에 살아야 할 제대로 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지만,
아직 절망할 정도도,
너무나 힘겨워서 실망할 정도도 아니었고,
이 순간의 달콤함 때문에 여기서 케이블카를 타 버린다면,
그래서 내가 가야할 모든 과정들을 생략하게 된다면,
그리고 내가 견더야할 힘겨움과 절망의 감정들을 그냥 이렇게 지나쳐버린다면
평생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모님께는
부모님이 그 학교에다가 돈을 갖다바치고
이렇게 불공정하고, 도덕적이지 않은 방법으로, 노력하지 않고 교사가 되었을 때
내가 학생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라는 말을
도덕적이고 착하게, 거짓말하지 말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느냐고,
평생 죄책감을 가지고 살 것 같다고.
말씀드렸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할지도 모르겠다.
먹고 사는 문제보다 더 이상 중요한 게 어디냐고,
도덕이나 삶의 과정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니 인생이 걸린 문제라고.
앞으로 어떻게 살거냐고.
다들 그렇게 하는데 따라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게 받아들이는 걸 그런 식으로 거부하는걸 이해할 수 없다고.
배부른 소리 하지 말라고.

그래.
다 맞는 얘기이다.
그리고 나는 어쩌면 배부른 소리하고 있는걸 수도 있다.
혼자서 되도 않은 고상한척, 도덕적인 척 하는 걸 수도 있다.
부모님을 잘 만나 지금까지 편하게 사느라
고생을 안해봐서, 정말로 힘든게 뭔지도 모르는 놈의
철없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내가 아무리 아니라고 항변해도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할 거란 것도 안다.

근데,
나는 그게 안 된다.
철없는 생각일지라도
내 노력으로 무언가를 이루고 싶다.
노력없는 결과가
내 삶의 편안함과 안정을 가져다주겠지만,
무한한 허무함과 삶의 권태를 가져다주기도 할 것이다.

내가 앞으로 1-2년 후에
나 스스로 최선의 노력들을 동원하고
내가 견더야할 힘든 순간들을 온전히 부딪혀낸 다음이라면
내가 어떠한 결정을 하게 될지 나도 알 수 없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에
그 제안을 받아들이는 건 아닌 것 같았다.

교사가 되는 길은 이미 상당히 왜곡되어버려서,
정상적으로 교사가 되기는
'낙타가 바늘 구멍 뚫기'
라는 속담이 가장 잘 어울리는 상황일 정도이다.
그런 상황에서 인맥 있고, 돈 있는 사람들은
사립학교 교사라는 대안을 선택한다.
그것은 비도덕적인게 아니라,
이 왜곡된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당연한 대안인지도 모른다.
일단 살고 봐야 하니까 말이다.
모든 사람들이 파도에 휩쓸려 간다고,
파도에 휩쓸려 가지 않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면,
다른 사람에겐 비밀로 한 채 일단은 나 하나 사는게 우선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게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당연한 태도이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삶의 방향과 가치를 잃어버린 삶을 과연 죽음보다도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자기 스스로를 이미 잃어버린 삶을 과연 죽음보다도 낫다고 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왜 사는 것일까?
평생 고민하고 살아야 할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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